정책/연구자료
약자들의 사회협약 - 아일랜드, 이탈리아 및 한국 사례 비교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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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 아일랜드, 이탈리아 및 한국이라는 상이한 국가의 사례 분석에 기초하여 본고는 사회협약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출현하고 재생산 되는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도출하고자 한다. 세 나라는 역사, 문화, 경제규모, 정치 발전, 제도적 유산, 경제 구조, 노사관계 전통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세 나라의 극히 상이한 배경 조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발생한 사회협약은 사회현상의 기저를 관철하는 일반 논리를 밝히고 이론을 구축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 나라 모두에서 사회협약이 출현하였지만 사회협약의 제도화 정도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1998년에 이르러서야 노사정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사회협약은 곧 불안정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1990년대에 들어 사회협약 시도는 대부분 성공하였지만 우여곡절을 겪고있다. 아일랜드의 경우 사회협약이 도입된지 17년이 지나면서 지속성과 안정성이 증대되었으며 이는 여전히 주요 공공 정책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연구는 선거 기반이 약하고 경제 위기를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약한 정부가 개혁정책을 조정하기 위해 사회세력과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하고자 시도할 때 사회협약으로 이어지는 노사정간 교섭이 나타난다고 본다. 본고의 사례에서 세 나라의 모든 정부는 위기 상황 하에서 소수 정부였거나(아일랜드 및 한국) 다른 이유로 극히 무기력해진 정부(이탈리아)였다. 그러나 이 연구의 대상 국가와 유사하게 외부 환경 제약과 위협에 노출되었지만 정부의 선거기반이 약화되지 않았던 벨기에, 인도네시아, 기타 아시아 국가의 유사 사례에서 정부는 일방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하였던 경향성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위기에 대한 노사정간 공감대가 사회협약으로 자리 잡으려면 ‘약자 연합’, 즉 약한 정부와 투쟁성이 약한 노조 사이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노조는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도출하고자 하는 전략적 결정을 선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위기 환경으로 인해 노조가 필연적이거나 자동적으로 취하는 선택이 아니라 온건파가 강경파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전반적인 노동 운동의 주류를 형성할 때 나타나는 노조 내부의 권력 투쟁의 산물이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의 다수의 사회협약과 안정적이지 않은 한국의 사회협약의 차이점을 통해 내부 권력 투쟁이 근본적으로 상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의 경우 온건파가 승리한 반면 한국은 결국 온건파의 패배로 이어졌다. 노조 단체 내부의 의사 결정 규칙이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처럼 집단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기층 노동자(비조직 노동자를 포함) 모두의 선택을 허용하는지 여부 또는 한국의 경우와 같이 집단적 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노조 지도부 및 간부에게만 주어지느냐에 따라 내부 권력 투쟁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이 연구는 사용자의 전략적 선택과 의지는 사회협약의 출현에 꼭 필요하지 않지만 사회협약의 재생산 및 안정화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사이에 사회협약 유지 기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용자의 사회협약에 대한 태도 변화에 기인한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사용자 단체는 사회협약 초기 전략적 불확실성 때문에 소극적인 태도를 가졌지만 점차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본고는 이러한 사용자의 입장 변화는 사회협약 체결의 성과가 재계, 특히 아일랜드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고기술 산업부문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이탈리아는 사회협약의 성과가 재계는 물론 경제 전반에 그다지 기여한 바가 없었다. 따라서 사용자는 특별히 협약 이행에 책임을 지고자 하지 않았고 2001년 선거 결과 중도 우파 정부가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지지를 받으면서 등장하자 결국 협약 이행 의무를 방기하였다. 그 대신 노동시장의 경직적 규제 해제를 위해 정부에 로비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위의 주장은 추후 더 다듬어지고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도 “약자 연합”이라는 주장은 이론적 시사점 외에도 연구 방법론 상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회협약 체결은 정치 현상이며, 정부의 사회파트너 포용여부 결정은 정치 체계의 구조적, 전략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 행위자가 협상을 통한 해결 방안 의지를 밝히는 이유는 내부의 정치적 투쟁에서 비롯된다. 과거 관행에 따라 이러한 현상을 단지 이익 단체 또는 노사 관계만을 통해 접근한다면 사회주체들의 행위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