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보고서

보고서명동북아문화공동체와 유럽문화공동체의 공통성과 차별성
  • 협력과 통합을 핵심으로 하는 탈냉전의 세계질서 속에서 역내 국가들 사이의 지역 공동체 구성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는 지역협력이 정치·경제적 실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간의 군사·안보적 갈등이 약화된 가운데 사회·경제적 협력과 교류가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의 형성이나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의 창설과 같은 경제적 지역주의의 흐름이 진행되는 가운데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세안(ASEAN) +3’,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강화 등 다양한 협력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 공동체 구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특히 참여정부 출범 이후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설치와 동북아시대위원회로의 개편 등을 통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 지역에서의 경제협력이나 공동체 구성의 실익이 매우 클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구성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추진은 미진하기만 하다. 이는 무엇보다 탈냉전 이후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 민족주의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그 결과 지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지역적 연대감과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북아 경제중심’이나 ‘동북아 물류중심’ 등을 통해 활성화되고 있는 동북아 공동체 구성 논의는 자칫 강대국의 정치·군사적 논리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낡은 패러다임 속에서 역내 국가들 사이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 동북아 공동체 실현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동북아공동체가 현실적인 차원에서 설득력을 지니고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문화가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임을 주목하고 동북아문화공동체(Northeast Asian Cultural Community)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다. 동북아문화공동체라는 개념은 동북아문화에 기초한 공동체(Community based on Northeast Asian Culture)라는 의미와 동북아라는 지역에 기반한 문화공동체(Cultural Community basedon Northeast Asian Culture)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아울러 문화공동체의 형성은 ‘유산으로서의 공동체’와 ‘프로젝트로서의 공동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고려할 수 있다. 전자가 역사와 문화의 총량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문화적 유산의 동질성 회복과 활용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프로젝트로서의 동북아’는 ‘유산으로서의 동북아’를 새롭게 인식하고 상호 문화적 다양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가운데 공통성과 보편성을 확장시키기 위한 구상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단절이나 인식의 전환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발전을 의미한다.
    지역통합의 선행사례인 유럽의 공동체 형성과 통합과정은 동북아 공동체 구성에 있어서 문화적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당초 유럽의 지역적 통합은 경제적 실익과 안전 보장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었으나,통합과정이 진행될수록 항구적인 통합을 위해서는 유럽적 정체성의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유럽 공동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의 추진은 유럽통합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유럽은 역사·문화적으로 종교와 장원, 민족국가의 형성 등 내적 교류작용과 국가간 경쟁, 십자군전쟁 등 외적 타자성의 인식 등을 통하여 공통의 문화와 표준을 형성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근대화과정에서는 상호 교류와 대외 진출, 그리고 식민지 침략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통해 하나의 중심적 사고와 공동운명체로서의 인식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유산으로서의 유럽문화공동체를 확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울인 노력은 단순히 유럽의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협의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유럽공동체 형성을 위한 노력은 교육과 직업훈련, 청소년 교류 등 광의적이고 다차원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전개되었으며, 특히 역내 성원들을 유럽 시민으로 함양하기 위해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인식과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정책적 노력으로 뒷받침되었다. 즉 유럽문화공동체는 역사와 문화의 총량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유산으로서의 문화공동체’에 기반을 두면서도 단순히 거기에 의존하기보다는 유산을 활용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프로젝트로서의 문화공동체’ 형성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와 달리 동북아는 역사적으로 중국 중심의 질서를 중심으로 하는 비교적 느슨한 상호 작용과 교류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중국의영향력 약화와 외세 침입의 근대화과정 속에서 탈(脫)중국적이고 독자적인 민족국가 만들기에 치중해 왔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가진 동북아 지역에 대한 인식 역시 차이를 보인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을 세계의중심으로 생각하는 중화주의로 무장되어 있으며, 해양세력인 일본은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와 함께 근대화과정으로부터 시작된 ‘선택된 탈아론(脫亞論)’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사대와 선린의 대외관계를 통해 지역 강국들 사이에서 국가들 간의 우호와 협력을 강조하는 매개체 역할을수행해 왔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편입된 굴욕적지배를 경험함으로써 민족주의에 근간을 둔 사고와 지역적 인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과거 유산으로서의 동북아는 중국 중심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며, 이런 의미에서 유산으로서의 동북아문화공동체로의 접근은 자칫 중국중심적 문화질서의 복원으로 귀결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시대론’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동북아 담론은 ‘중심주의’가 낳을 수 있는 폐해와 오해를 불식하고, 관련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동북아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동북아시대는 ‘유산으로서의 동북아’가 아닌 ‘프로젝트로서의 동북아’를 지향해야 한다. ‘프로젝트로서의 동북아’는 역사의 창조적 계승뿐만이 아니라 각국 사이의 관계 정상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관계 정상화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동북아 지역의 역사·문화적 갈등요인을 해소하고 국가간 신뢰 구축을 위해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젝트로서의 동북아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다음과 같은 장애요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는 아직도군사·안보적 불신이라는 정치적 요인이 지역협력과 공동체 형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존재한다. 중일간의 경쟁관계와 한반도 문제는 역내 정치적 긴장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둘째, 역내 국가들의 상이한경제체제와 중국의 경제력 부상 등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관계와 입장차이가 심화되고 있다. 셋째, 탈냉전 이후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국가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넷째, 동북아 지역을 둘러싼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지역적 개념과 범주, 과거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에 기인하는 인식론적 차이가 동북아 공동체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극복하고 동북아 공동체의 문화적 동질성과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민족이나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지역을 단위로 한 인식의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 지역의 문화적 유사성과 동질성을 넓혀 나가는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과거 역사의 굴곡과 문화적 변질을 뛰어넘어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정학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지리문화적(geo-cultural) 정체성을 되찾는 노력이 함께 전개되어야 한다. 더욱이 동북아 공동체 실현을 위한 문화적 접근은 한국에 있어서도 많은 강점을 부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해외거주 한국민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 정보·통신 기술에서 가진 우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문화교류와연대사업을 주도할 수 있다.
    유럽의 공동체 형성에 대한 고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동북아 공동체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동북아적 표준설정을 위한 문화적 협력과 동시적이고 중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교훈은 또한 동북아 공동체 형성에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재설정을 통한 “참여적 동북아문화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국가는 폭발하는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동북아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에너지로 순환시키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국가 내부적 역동성과 국제적 역동성을 조화롭게 접합시켜야 한다. 곧, 동북아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시장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얽혀 새로운 초국가적 실체를 만들어내는 스파게티모델의 지역적 협력과 개별국가의 주권이 존중되는 가운데 국제적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부간 협력을 강화하는 샐러드 모델의 지역적 협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유럽의 공동체 수립과 추진과정은 문화적 측면의 협력이 다른 층위의 협력을 촉진시키고, 장기적으로 동북아 공동체 구상이 동북아 문명공동체로의 발전을 지향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유럽문화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동북아 공동체 구성에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북아 공동체의 수립을 위하여 약소국가들의 연합인 동남아 국가들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동남아 지렛대론’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지역적 강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나 중국의 ‘동북 3성’ 수준으로 환원되는 동북아론을 경계하는 방안이다. 이는 동시에 미국을 견제함과 동시에 역내 국가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약소국들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하 원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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